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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6일 토요일

[가정예화] 어느 훈련병의 이야기

어느 훈련병의 일기 - 낮은울타리

 
올 2월, 나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그때는 늦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전투복에 야전상의를 걸치고도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날 만큼 추웠다. 게다가 점호 시간만 되면 당직 소대장은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바닷바람이 쌩쌩 부는 연병장에 집합시켜 팬티 차림으로 체력단련을 시키곤 했다. 그때 고된 훈련으로 내 손은 온통 상처 투성이에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턱턱 갈라져 꼭 원시인의 손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그날도 야간 체력단련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흙 묻은 손을 씻는데 상처 때문에 몹시 쓰렸다. 고왔던 손은 온데간데없고 벌겋게 얼어 퉁퉁 부어오른 손을 보자 나는 괜히 서글퍼졌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었다.

입대 하기 전,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하셨다. 
옆에 연탁 화덕을 두고 두꺼운 옷을 입으셨지만 항상 "날이 너무 춥구나!"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곤 하셨다. 그러다 우연히 찬물에 그릇을 닦는 어머니의 손을 보았는데 지금의 내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칠었다. 

그런데도 철이 없던 나는 "엄마, 약 좀 사서 발라.물도 데워 쓰고..."
하고 퉁명스럽게 말해 버렸다. 그때 어머니는 무관심한 내 말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우리 가족을 위해 그 추위에 상처 난 손으로 밤새워 일하던 어머니는 손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을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모포를 뒤집어 쓰고 한참동안 흐느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 자꾸만 입가를 맴돌았다.

"어머니, 사랑해요."



[사랑예화] 어머니의 손가락

어머니의 손가락


내가 결혼전 간호사로 일할때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아직 진료가 시작되기에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25살 남짓 되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두 손을 꼭 마주잡고 
병원문앞에 서있었다. 아마도 모녀인듯 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 아주머니..아직 진료 시작 될려면 좀 있어야 하는데요.. 선생님도 아직 안오셨구요.. "
" ..... "
" ..... "

내 말에 두 모녀가 기다리겠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마주 보았다.
업무 시작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두 모녀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작은 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엄마가 딸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긴장된..그러나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위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원장선생님이 오시고..나는 두 모녀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진료실로 들어온 아주머니는 원장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얘..얘가...제 딸아이예요...예..옛날에..그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기전에..외가에 놀러갔다가 농기구에 다쳐서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잘렸어요.. .....
다행이 네손가락은 접합수술에 성공했지만...근데....네...네번째 손가락만은 그러질 못했네요.......
다음달에 우리딸이 시집을 가게 됐어요..사위될 녀석...그래도 괜찮다고 하지만...그래도 어디 그런가요..
이 못난 에미.....보잘것 없고 어린 마음에 상처 많이 줬지만..그래도 결혼반지 끼울 손가락 주고 싶은게..이 못난 에미 바램이예요..
그래서 말인데....늙고 못생긴 손이지만 제 손가락으로 접합수술이 가능한지........ "

그 순간 딸도 나도 그리고 원장선생님도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

"그럼요..가능합니다. 예쁘게 수술 할수 있습니다. "

라고 했고..그말을 들은 두 모녀와 나도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가정예화] 도시락의 비밀

도시락의 비밀.. -- 솔로몬
 

가끔식 머리카락이 섞인 도시락밥을 먹는 중학생이 있었다.
게다가 심심찮게 모래까지 깨물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학생은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있으면 다소곳이 그것을 가려내고, 모래가 씹히면 조용히 그것을 뱉어낼 뿐이었다.
어떤 때는 머리카락과 돌을 그냥 넘겨 삼키는 바람에 한동안 목이 메이기도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교실의 다른 아이들은 그 학생을 안쓰럽게 여기면서 위생이 철저하지 못한 학생의 어머니를 비난했다. 어쩌면 계모일지 모른다고까지 생각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교실에는 그 학생과 매우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하지만 친구도 그 학생의 집을 몰랐다. 
그 학생은 친구에게 한 번도 자기집을 구경시켜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심이 많은 친구는 '아마도 가난해서 그런 걸거야'하고 구태여 조르지 않았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두 친구가 헤어져야 할 상황이 되자 그 학생은 친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는 이제야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학생의 뒤를 따라갔다.
언덕길을 한참 오르자 벽이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금이 간 허술한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은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 친구와 함께 왔어요!"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그러자 어두운 방안에서 그의 어머니가 더듬거면서 밖으로 나왔다.

"네 얘기 참 많이 들었다. 정말 고맙구나!"



학생의 어머니는 앞을 못보는 맹인이었던 것이다.


[가정예화]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 싶구나. -- 솔로몬

 
저는 9살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별하시고 저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형편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직장을 나가게 되었지요.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저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어머니는 점차 병이 들어가시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 호되게 혼이 난 다음 집을 나오고 말았어요. 물론 학교도 가지 않았구요.
집을 나와 친구네서 신세를 졌지만 신세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는 못 있겠더라구요.
배도 고프고 집생각도 났지만 집에 들어가긴 싫었어요. 그러다가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일은 너무나 힘들었고,냉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기심에 술도 마시게 되었고, 담배도 피우게 되었어요.
그러기를 한두 달, 벌써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게 되었지요.

저는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집에 전화를 했지요. 
아무도 받지 않더라구요. 몇번 더 전화를 더 걸었지만 마찬가지였어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이모에게 전화를 받는 순간 전 너무 당황했고 나의 몸에 싸늘히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북받쳐 올라오는 눈물로 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답니다.
일주일전 어머니가 악성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강례도 이미 치러졌구요.

어머니가 남기신 것은 사진과 일기장, 그리고 제가 가장 갖고 싶어하던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시고 가셨어요. 어머니의 일기장을 보며 장마비같은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어요.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싶구나..."

저는 속으로 말했죠.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시간이 뒤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해마다 어머니의 산소를 돌보며 지난 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답니다.

한순간의 방황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저버리시 않으시길 바랍니다.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가정예화]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어머니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소리는 눈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 놀란것은 흰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사실이었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 않은 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달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히 쌓인 무덤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런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세 가지 실패

옛날 한 청년이 스승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습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실패가 있단다."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