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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죽음예화, 죽음도 손 든 루터의 기도



지금으로부터 4백년전의 일이다. 
독일의 신학자 마틴 루터가 당시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할 때,
그에게 오른팔과 같이 힘을 합께 하돈 동역자 프레드릭 니코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심한 병이 들어 도저희 소생할 가망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느낀 니코니우스는 떨리는 손으로 친구요 주의 일을 합께 하는 동역자인 마틴 루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멀리서 그의 편지를 받아들은 루터는 깜짝 놀랐다. 
도저희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곧 바로 루터는 병석에 누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구여 나는 자네가 더 살것을 하나님 이름으로 명령하네. 나에게 있있어서 교회를 개혁하는데 자네가 필요하니 주님은 자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도록 하지 않을 걸세. 자네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나의 뜻이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네."

임종을 앞둔 니코니우스는 루터의편지 내용을 전해 듣고 얼마후 다시 소생했다.
루터의 확신에 찬 기도와 신념에서 죽음 조차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6년동안 루터와 더 일을 하다가 주님품으로 돌아 갔다. 

우리가 생의 목표를 하나님께 일치시켜 놓고 그것을 위해 살아 간다면 
우리도 루터처럼 그런 자신있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옥한옴 목사 제공--




2017년 7월 29일 토요일

[결혼] 루터의 결혼 생활

 

천주교는 끈질기게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은 한 수녀와의 스캔들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선전하여 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루터의 결혼은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루터가 "구원은 행위로써가 아니고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외쳤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수녀원이다. 천주교는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고, 중세에서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위는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가 이신득의의 복음을 전했을 때, 수녀들은 더이상 수녀원의 높은 벽 안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녀원에 나왔고, 적당한 배필을 찾아 결혼을 하게 되엇다.
 
루터가 실제로 많은 수녀들을 자기의 동료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한쌍이 맺어지면 가장 분명하게 종교개혁의 지지자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루터는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루터가 결혼을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가 언제 어느 때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동료들은 루터의 이런 행동을 의심스럽게 생각하였다. 혹시 루터가 내심으로 천주교의 윤리, 즉 독신제도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루터의 친구들은 루터에게 당신 자신이 결혼함으로써 천주교에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다. 루터는 이런 동료들의 요구에 못이겨서 결혼을 한 것이다. 루터가 결혼을 한 것은 종교개혁을 시작한 후 8년이 지난 1525년 6월이었다.
 
루터가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매우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았다. 쏘시개와 성냥이 있으면 불이 나게 마련이듯이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성적인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성적인 문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차라리 결혼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결혼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결혼한 후 루터는 가정이란, 성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보다 복잡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엇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루터는 결혼 후에 가정의 제2의 수도원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진정으로 인내, 절제, 사랑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루터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그의 부인이 된 여자는 전에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보라였다. 루터는 가정의 경제에 대해서는 책임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카타리나는 어려운 살림을 지혜롭게 꾸려나갔다. 

또한 루터는 원래부터 병약한 인물이었다. 세상의 온갖 병이란 병은 다 지니고 있었다. 이런 루터를 정성스럽게 보살펴준 사람이 카타리나였다. 그래서 루터는 카타리나를 "나의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그녀의 애칭인 카티(Katie)를 케테(Kette)라고 부르며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케테는 쇠고랑 이라는 뜻이다. 

루터는 항상 기독교 천년의 역사상 어느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맛본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세 가지 실패

옛날 한 청년이 스승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습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실패가 있단다."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