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나의 아들 -- 이민정
"엄마, 나 선생님 말씀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다 빨아들이고 올께요."
우리집 큰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내게 안겨준 희망의 말이었다.
아들의 학교생활, 그 세월은 나에게 기쁨과 고통, 그리고 사랑과 인내로 부모됨의 의미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 뒤 십여년이 지난 어느날, 그날은 어엿이 자라 의과대학생이 된 아들이 다음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그런데 남편은 아들의 무슨 행동이 그리 못마땅했는지 훈계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그저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부자의 모습을 보며 초조해졌다. '내일이 시험인 아들을 붙들고 웬 말이 저리도 많으실까, 이제 그만 하시지…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하며 남편의 얘기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5분, 15분,20분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슬며시 남편 옆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역시 성적이 좋아야 인정받는다구,
학교성적은 어디나 따라다니거든, 그러니까…"
남편의 말이 영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톡 쏘아 주고 싶었다.
"여보, 그 얘기 백번도 더 들었어요. 그만 좀 하세요. 내일 시험 볼 아들 붙잡고 겨우 그런 말씀을 해야겠어요?" 하고. 그러나 섣불리 끼여들기가 뭐해서 할말을 궁리했다. '여보, 당신 그말 열번째 하고 있네요, 아니야, 두 번? 다섯 번? 나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여보, 얘기중에 죄송한데요. 당신 지금 하는 말 얘기 여섯 번째 듣는 것 같아요"
그때 아들이 말했다.
" 어머님, 중요한 얘기는 반복해 들어도 됩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통쾌했다. 남편도 통쾌한 듯 크게 웃었다.
아들도 시원한 듯 함박꽃처럼 웃었다.
"그래, 그만 들어가봐라"
남편이 아들을 놓아주었다.
나는 내 아들이지만 존경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기회를 보아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내 아들이지만 이 엄마는 너를 한없이 존경한단다. 어쩌면 그순간에 그렇게 적절한 말을 할 수 있었니?"
아들은 나를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아, 아들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다니…
'마크 트웨인은 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고도 두 달은 살 수 있다'고 했다는데
나에게 아들의 그 말은 몇 년이 지나도 지금껏 기쁨의 양식이 되어 주고 있다.
아들은 나를 대화법 강사로 만든 나의 스승이었다.
이민정님<부모자녀 대화기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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