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유광식 씨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바르게살기 운동 성동구협의회 주최 제1회 효자효부상에 유광식 씨가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유광식 씨는 스스로 효자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상을 사양하겠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나가려던 유광식 씨는 아랫목에 누워있는 장모님의 이부자리를 살펴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유광식 씨는 지난 84년 부인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 슬픔을 삭일 여유도 없이 연이어 모시고 있던 장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져 유광식 씨는 장모님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다.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는 여전히 막노동판에서 벌어들인 변변치 못한 수입으로 8평짜리 단칸방에서 장모님을 돌봐오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그동안 세 남매를 훌륭히 키워냈고 다섯 명의 처제를 대학까지 졸업시켜 모두 결혼을 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유광식 씨의 마음은 뿌듯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유광식 씨의 극진한 효심한 선한 마음은 온 동네에 퍼져나갔고 효자효부상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1995년 11월17일 오후 성동구민회관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말끔히 차려입은 옷차림과는 다르게 유광식 씨의 마음은 부끄럽기만 했다.
상을 받고 난후 그는 과거를 털어놓는 심정으로 식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부끄럽습니다. 아내가 죽은 뒤에 모셔오던 장모님이 재혼할 때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효스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효자상 이라니요..."
유광식 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낌없이 박수소리가 식장을 가득 메웠으나 그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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